한 줄 요약
역대 최대 반도체 수출이라는 최고의 펀더멘털 지표가 나온 날, 코스피는 유가 100달러와 미국채 금리 5% 임박이라는 할인율 충격에 7000선을 내주며 1.76% 하락했다.
시장 현황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24.01포인트(1.76%) 내린 6909.91로 마감했다. 개장부터 3.29% 급락한 6802.50으로 출발해 장중 낙폭이 200포인트를 넘었으나, 오후 들어 절반가량을 되돌렸다. 그럼에도 이틀간 지켜온 7000선은 종가 기준으로 내줬다. 코스닥은 16.28포인트(1.95%) 내린 820.64로 마감해 코스피보다 더 큰 폭으로 밀렸다.
수급은 어제와 판박이였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2조4359억원, 기관이 1조6476억원을 순매도하며 3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이어갔다. 이를 받아낸 쪽은 개인 2조4177억원과 기타법인 1조6525억원이다. 기타법인의 순매수는 오늘로 18거래일 연속인데, 삼성전자의 임직원 주식 보상과 SK하이닉스의 자사주 소각용 매입이 그 실체다. 코스닥에서도 외국인 3581억원, 기관 2268억원 순매도를 개인이 5704억원으로 받았다.
업종은 금리 상승이라는 하나의 변수에 정직하게 갈렸다. 건설(+1.90%), 보험(+1.56%), 일반서비스(+1.43%)가 올랐고 전기·전자(-2.66%), 제조(-2.21%), 의료·정밀기기(-2.18%)가 밀렸다. 삼성전자는 3.53% 내린 25만9000원, SK하이닉스는 2.16% 내린 181만3000원에 마감했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이 5.62%, 신한지주가 2.09%, KB금융이 2.08% 올랐다. 코스닥에서는 반도체 장비주인 원익IPS(-7.15%)와 주성엔지니어링(-5.43%), 2차전지 대표주 에코프로비엠(-7.08%)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원·달러 환율은 6.7원 오른 1345.9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채권시장은 미국 금리 급등의 압력을 그대로 받았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8월 27일 인상된 3.00%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국채통합계좌는 개설 2년 만에 누적 거래 1740조원을 넘어서며 외국인 국채 투자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배경
이날의 하락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격화되면서 브렌트유가 배럴당 105달러 안팎까지 치솟았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00달러를 돌파했다. 어제 브렌트유가 100달러를 넘은 데 이어 WTI까지 세 자릿수에 올라선 것이다. 유가가 물가 기대를 밀어올리자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4.935%까지 올라 심리적 마지노선인 5%에 바짝 다가섰고, 30년물은 5.35%를 넘어 2007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미 재무부가 장기물 바이백 입찰에서 한도(60억달러)에 못 미치는 물량만 사들인 것도 금리 상승을 부추겼다.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나흘 연속 하락했다.
여기에 오늘 밤 발표되는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경계심을 더했다. 이미 8월 생산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5.4% 올라 전망치를 웃돈 상태여서, CPI가 상방 서프라이즈를 낼 경우 연준의 금리 인상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반대편에는 한국만의 호재가 있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9월 1~10일 수출은 35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2.6% 늘었고, 반도체 수출은 165억달러로 270.1% 급증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47.1%로 1년 새 23.9%포인트 확대됐고, 무역수지는 104억달러 흑자를 냈다. 이 소식과 기타법인의 자사주 매입이 오후 반등의 두 축이었다.
인사이트
오늘 시장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사실은 펀더멘털과 주가의 정면 충돌이다. 반도체 수출이 1년 만에 3.7배로 늘어난 날, 그 수출을 만들어내는 두 기업의 주가는 2~3%씩 빠졌다. 이익이 나빠서가 아니다. 할인율이 올랐기 때문이다. 미 국채 10년물 4.95%는 고성장·고밸류 자산의 현재가치를 기계적으로 깎아내리는 숫자이고, 지금 코스피 시가총액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두 종목이 바로 그 성격의 자산이다. 시장은 지금 기업의 이익 전망이 아니라 이익에 매기는 배수를 재조정하고 있다. 이 국면에서 좋은 실적 뉴스는 주가를 올리지 못하고, 다만 바닥을 조금 단단하게 만들 뿐이다. 오늘 장중 200포인트 낙폭이 124포인트로 줄어든 것이 정확히 그 역할이었다.
둘째, 기타법인이라는 방어선의 성격을 냉정히 봐야 한다. 18거래일 연속 순매수, 오늘 하루만 1조6525억원. 외국인 매도를 받아내는 이 자금은 시장의 낙관에서 나온 매수가 아니라 자사주 소각과 임직원 보상이라는 기업의 자본정책에서 나온 매수다. 기업이 정한 프로그램대로 집행되므로 주가가 빠질수록 같은 금액으로 더 많은 주식을 산다는 점에서 훌륭한 자동 안정장치지만, 예산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영구적이지 않다. 지금 한국 증시의 하방을 지탱하는 힘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의 복귀가 아니라 기업의 지갑이라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이 종료되는 시점의 수급 공백을 미리 계산해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셋째, 환율의 신호가 바뀌었다. 어제는 유가 급등에도 환율이 1.4원 내렸는데, 오늘은 무역수지 104억달러 흑자라는 강력한 원화 강세 재료가 나왔음에도 6.7원 올랐다. 경상수지가 만들어내는 달러 공급이 위험회피 국면의 달러 수요를 이기지 못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수출 호조가 환율을 방어해주던 구도가 약해지면, 유가 상승이 수입물가를 통해 국내 물가로 전이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환율은 이제 한국 증시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물가와 통화정책의 선행변수로 봐야 할 국면에 들어섰다.
넷째, 업종 로테이션이 일회성 반응을 넘어서고 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보험·은행·건설이 오르고 전기·전자가 빠졌다. 이틀 연속 같은 패턴이 나왔다는 것은 시장이 ‘유가와 금리 상승이 며칠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당분간 지속될 환경’이라는 쪽으로 포지션을 옮기고 있다는 뜻이다. HD현대중공업의 5.62% 상승처럼 에너지 사이클과 연결된 종목의 강세도 같은 맥락이다. 지수 방향만 보면 하락장이지만, 내부에서는 자금이 성장주에서 실물·금리 수혜주로 이동하는 구조적 재배치가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일정은 오늘 밤 미국 8월 CPI 하나로 압축된다. PPI가 이미 5.4%로 예상을 웃돈 상황에서 CPI마저 상방 서프라이즈가 나오면, 유가 상승이 이미 최종 소비자물가에 침투했다는 확인이 되고 미 국채 10년물의 5% 돌파는 시간 문제가 된다. 그 경우 한국은행도 8월 3.00% 인상으로 끝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반대로 CPI가 예상을 밑돌면 오늘의 하락은 과도한 선반영이 되고, 반도체 수출 270%라는 펀더멘털이 다시 가격을 지배하는 국면이 열린다. 같은 지표 하나에 두 시나리오의 확률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대한 대비다.
출처
- 코스피, 유가·금리 공포 속 낙폭 줄여 6900선 마감…코스닥도 하락 (한국경제)
- 코스피, 외인-기관 쌍끌이 매도에 하락마감…6900선 (파이낸셜뉴스)
- [마감 시황] 코스피, 7,000선 무너지며 6,909.91 종료…원/달러 환율 1,345.9원으로 상승 마감 (Businesskorea)
- 원/달러 환율, 6.7원 오른 1345.9원 (머니투데이)
- 국제유가 폭등·국채금리 급등에 뉴욕증시 3대 지수 나흘째 하락 (파이낸셜뉴스)
- 유가 급등·물가 불안에 美 30년물 국채금리 5.35% ’19년 만에 최고’ (파이낸셜뉴스)
- 이달에도 반도체 수출 ‘역대 최대’…270% 늘며 165억달러 수출 (아시아경제)
- 국채통합계좌 2년 만에 누적 거래 1740조…외국인 국채투자 인프라로 안착 (파이낸셜뉴스)
사진: Ivan Chumak / Pexels